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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망 내가 ‘죽었다’ 날조

2010-07-05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유현족 (구술), 나귀평 (정리)

나의 이름은 유현족(刘贤足)이고 옛날 이름은 유현국(刘贤菊)이며 71세, 사천성 거(渠)현 쌍토향 석연(石碾)촌 1조에 거주하고 있다. 법륜공수련을 포기한지 2년이나 되는 나는 근일에야 친구를 통해 명혜망에서 일찍 2001년 11월 26일 “유현국, 여, 60세, 사천 거현 쌍토향 사람, 2000년 1월 북경에 청원갔다가 송환당한후 거현 공안국의 박해로 치사”라는 기사를 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쌍토향의 옛 /‘공우/’들중에 나를 제외하고는 /‘유현국/’이라 부르는 사람이 없다. 명혜망의 기사에서 언급한 /‘유현국/’은 성별 제외하고는 모두가 나 개인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그러므로 명혜망에서 말한 사람이 바로 나라 인정된다. 이 소식은 나를 경악케하고 분통이 터지게 만들었다. 그들이 나를 여자로 취급한것 외에도 내가 아직 엄연히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법륜공에서 거짓을 날조했다는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전에 나의 이름은 유현국이라 불렀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여자이름이라고 놀려주군 했다. 나는 말이나 행동이 대담한 사람이고 체면을 많이 차리는 남자다. 대집체 생산시기 대대의 부대대장 겸 민병련장을 맡은 나는 내 이름중의 /‘국/’자를 /‘족/’자로 바꿨다(사천말에 /‘족/’을 /‘국/’으로 발음), 더는 내 이름이 여자이름이라는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를 /‘유현국/’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어른들이 중학공부를 한 나를 글깨나 아는 /‘문화인/’으로 알아주는 덕에 나는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50세 되던 그해 나는 전립선염에 걸렸다. 경제형편이 그닥 좋지 않아 돈이 생기면 약을 먹다 돈이 떨어지면 약 없이 억지로 버틸 수 밖게 없었다. 그러므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1997년 8월, 나는 다른 사람한테서 법륜공을 소개받았다. 그는 <전법륜> 한권을 주며 “법륜공은 아주 신통한 효험이 있다. 잘 학습하고 잘 이해하고 잘 연공만 하면 돈을 써가며 치료를 받지 않아도 자연히 병을 제거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이 되고 /‘상층차/’하고 /‘원만/’을 실현할 수 있다”했다. 실험삼아 나는 법륜공 수련을 시작했다.

그후 환갑이 다 된 나는 매일 집에 앉아 법학습을 하고 연공하고 /‘세상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무와도 내왕을 하지 않았다. 마누라 왕인경은 매일 묵묵히, 실성한 사람같이, 몰라보게 변한 내가 치매에 걸린 줄 알았다. 이때부터 우리가정은 예전의 안온과 화목을 상실했다.

1999년 7월 법륜공을 단속했어도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집에 숨어서 연공을 견지했다.

성심껏 수련했으나 몸은 자주 불편했고 배뇨장애와 하복부 창만 통증으로 걷기도 힘들때가 많았다. 처자들이 여러번 입원치료을 권했으나 나는 여전히 법륜공에 빠져 고집을 부리며 입원치료를 거부했다. 나는 그들에게 “너희들은 몰라도 한창 모른다. 통증이 있다는것은 /‘소업/’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부님은 치료를 하면 /‘업력/’을 짓눌러 내려가게한다 했는데 나는 반드시 법학습과 연공을 다그쳐야 한다!”라 했다. 그후 부터 나는 법학습과 연공에 더 열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병세는 호전이 아니라 도리여 날로 심해졌다. 2005년 5월 병통을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아내는 사람을 불러 나를 억지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평생 처음으로 나는 입원치료를 받았다. 일주간 치료후 병세 차도를 보였고 통증이 많이 완화됐다. 그때 나는 “사부님이 알면 큰일 날것이다. 꼭 나를 책망할텐데!”라는 걱정으로 슬그머니 병원에서 도망쳐 집에 돌아와 계속해서 법학습과 연공을 진행했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장기적으로 치료를 거부한 결과 병은 근치되지 못했고 건강상태가 더더욱 나빠졌다. 2007년 8월 나는 극심한 하복부 창만통증으로 침대에서 식은 땀을 빼며 뒹굴었다. 금방 혼절할것만 같았다. 화가 난 아내는 <전법륜> 등 법륜공책자들을 전부 소각해버리고 나늘 재차 병원으로 끌고 갔다/…/…

병원에서 나는 전후를 곰곰히 생각하고 반복 대비, 점차 각성하게 됐다. 무엇때문에 내가 사부에게 이토록 충성하고 이해력이 좋고 법학습과 연공에서도 정진할 수 있고 <전법륜>중의 많은 장절들을 막힘없이 줄줄 외우는데 /‘업력/’은 여전히 소업이 안 될가? /…/… 그때부터 나는 연공을 포기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얼마간의 입원치료를 받은 후 건강상태가 확 달라졌다. 소변장애도, 하복부 창만 느낌도 다 없어지고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Kaiwind.com, 201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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