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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서 일어난 참극

2009-08-31 기원 하 다:Kaiwind Auteur:고준홍

나는 석가장 녹천(鹿泉)시 획녹진(获鹿镇)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은행 녹천지점 직원 고준홍(42세)이다. 전에 나는 법륜공미혹자였다. 다행히 방교(帮教)지원자들의 인내성 있는 도움으로 법륜공의 정신통제를 철저히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친구 량여화는 나처럼 행운스럽지 못하다. 2007년 법륜공의 터무니없는 역설이 귀중한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여화의 고향은 남방이다. 석가장에 시집온후 슈퍼에 출근했었다. 가정경제형편이 퍽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1999년초 그는 홍반성 낭창에 걸렸다. 하북성 제2의원, 석가장시 화평의원 등 큰 병원들에서 다 치료를 받았었다. 의사는 이 병은 비록 완치가 어려운 병이라지만 적극 치료하고 제때에 적당량의 약만 복용한다면 병세는 얼마든지 통제될 수 있다 했다. 병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던차 1999년 6월 그는 다른 사람을 통해 법륜공을 연공하면 병을 완치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서적들을 사서 연공을 시작했다. 수련을 시작한지 1개월만에 국가에서 법륜공을 금지했다. 처음에 그는 담이 작아 감히 나가서 연공하지 못하고 가만히 집에서 연공을 하고 <전법륜>을 읽었다. 나중에 이홍지의 “나가서 법을 실증하라”는 경문의 부추김과 독촉에 하루빨리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갖은 노력으로 “법을 학습하는” 비밀지점을 찾아냈고 다시 연공을 시작했다.

나와 량여화는 소형 비밀“법회”에서 만났다. 첫 인상에 그는 아주 상냥한 여자었다. 손에 자료 몇부를 들고 있는 그를 보고 나는 “나가  배포하기에 두렵지도 않냐?” 물었다. 그는 “정말로 사부님의 말대로 소업으로 온몸의 병만 없앨 수 있다면 자료배포쯤이야, 대낮에 큰 길가에 나서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병은 바로 법륜대법 수련덕분에 나았으니 당신들도 어서 수련을 하라 선전할 용기도 있다”했다. 그 말에 우리는 의중을 알았다는 듯이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아마 성격이 비슷해서인지 우리는 피차 서로가 일찍 만나지 못한것을 한탄했다. 우리들 사이는 동수로 부터 점차 서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친한 친구사이로 변했다.

지난번 그 “법회”후 그는 자주 나와 기타 몇몇 동수들을 자기집에 불러다 놓고 “학습심득”을 교류했다. 한번은 점점 심해가는 그의 병세가 화제에 올랐다. 몇몇 동수들은 일제히 그더러 법을 더 많이 학습하고 자료들을 더 많이 배포하라 권유했다. 진심으로 수련만 견지하면 그의 신체는 자연히 정화되어 최종 “원만”에 도달할 수 있다 했다. 그러자 “오성(悟性)”이 제고된 여화는 “아마도 전에 내가 사부님의 요구대로 엄격하게 집행하지 못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낡은 세력이 그 틈을 타서 나를 이렇게 업을 갚도록 하는가봐, 특히 나는 약을 먹는 문제에서 늘 망설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사부가 마련한 길로 나가려면 더는 약을 먹어서는 안된다는것을 알게 됐다. 사부를 굳게 믿고 법을 굳게 믿어야지!” 그후부터 그는 결심을 내리고 다시는 더 약을 먹지 않았고 “소업”으로 병을 치료하려 들었다.

2007년초의 어느 오후, 몇몇 동수들이 부랴부랴 나를 찾아와 여화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어서 함께 그의 집에 가보자했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여화는 두눈을 지그시 감은채 쿠션을 끌어안고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온몸을 떨고 있었다. 얼굴에서는 콩알같은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눈을 뜨고 우리를 알은체 했다. 워낙 승부욕이 강한 그가 어지간히 견딜수만 있었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을것이라는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때 더는 옆에서 참고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이 그의 남편이(역시 동수) 아내를 가슴아파하며 “그럼 우리 약을 먹자”했다. 그러나 여화는 억지로 아픔을 참으면서도 “안돼요!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지 않고 약을 먹었다간 사부님이 관계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했다. 우리도 곁따라 그를 지지했고 그의 남편을 “대법”에 대한 태도가 확고하지 못하다고 나무람했다.

우리 여럿은 힘을 모아 그를 위해 “발정념”을 했다. 그러나 여화의 병세는 호전되지않고 점점 더 심해갔다. 사람인원수가 적어 에너지가 강하지 못한 탓이라 생각한 우리는 저녁에 더 많은 동수들을 불러 함께 그의 집에 가서 집중 “발정념”으로 에너지를 증대하고 그를 도와 이 고비를 넘겨주려 약속했다. 이런 황당한 짓들은 귀중한 구급치료 시간을 지체시켰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모두 사부의 법신이 꼭 그를 보호해 줄 수 있으리라고만 깊이 믿었다.

저녁에 그의 집에 도착해 보니 누렇게 변한 그의 얼굴에서 피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호흡할 맥도 없어했다. 그의 남편은 우리에게 별수없어 120에 구급전화를 걸었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의 머리를 나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그러면 혹시 조금이나마 편안하지 않을가 해서였다. 옆에 있는 동수들이 그를 동정하는 나를 볼가봐 나는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얼마 지나지않아 의사가 왔다. 검사후 여럿이서 그를 들것에 실었다. 아파서 여화는 반듯이 누울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나는 나의 팔을 베게하고 구급차를 따라 병원에 도착했다. 차가 병원으로 달리는 길에서 나는 계속 사부의 보호가 있으므로 꼭 이 생사의 고비를 넘길 수 있을거라고 그를 격려했다. 그러나 그는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한시간가량 지난후 구급실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서둘러 문쪽으로 욱 몰려갔다. 의사는 우리를 막지않고 고개만 흔들며 우리에게 후사를 준비하라 말했다. 모니터에 심전도파가 직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들 그 누구도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사는 규정대로라면 영안실로 옮겨야 되는데 어떨생각이냐 물었다. 이때 한 동수가 낮은 소리로 자기가 전에 명혜망에서 “발정념”으로 죽었던 사람을 살려낸 “신적”을 본적 있다 했다. 그의 말에 우리는 또 희망을 안고 이런 방법으로 해 보기로 결정하고 차량을 임대하여 그를 다시 집으로 싣고 왔다.

우리 몇은 서둘러 여화를 침대에 올려눕히고 방석을 깔고 가부좌하고 앉아 “발정념”을 시작했다. “신적”이 나타나기를 바랬다. 우리들의 강대한 “에너지장”속에서 여화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기를 바랬다. 그러나 2시간이상이 지났으나 여화는 아무런 소생의 흔적도 없었다. 그의 신체는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나이든 경험있는 동수가 지금 수의를 입히지 않으면 좀 더 있다간 수의마저 입히기 힘들거라 했다. 이때에야 우리들은 맥을 버리고 그한테 옷을 갈아입혔다. 나는 그의 목에 걸려있는 “법륜대법호무심생일념천사평안(法轮大法好务心生一念天赐平安)”라 적은 호신부를 벗길때 내심 갈등이 심했다. 사부의 법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무엇때문에 불쌍한 여화를 보호해 주지 않는단 말인가? 여화가 이렇게 가면 “원만”을 이룬것인가? 이때 옆에서 너도나도 의론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여화가 꼭 사부의 말대로 하지않고 병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전히 대법을 굳게 믿었고 사부가 그에게 합리한 위치를 마련해주리라 믿었다. 우리가 여화의 집을 나설때는 이미 밤 12시가 넘어서였다.

지금 지나간 이 일을 생각할때마다 나는 깊은 죄책감에 사로 잡히군 한다. 여화의 죽음에 회피할 수 없는 나의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것이 바로 법륜공의 진탕에 빠져 스스로 헤여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얼마나 무지몽매했는지 참 원통스럽다. 이홍지가 꾸며낸 아름다운 거짓속에서 살아온 우리가 얼마나 비참했는가, 더더욱 여화는 이 아름다운 거짓에 속아 자기의 귀중한 생명을 매장했다.

(Kaiwind.com, 200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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