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향(何海香), 여, 한족, 1957년 7월 9일 출생, 고중 학력, 하북성 한단(邯郸)시 총대(丛台)구 총대로 갑 31호에 살고 있다. 1997년 8월 한단시 총대구 법륜공보도소 보도원 번전영(藩全英)의 소개로 강신건체의 좋은 생각으로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전향후 나는 개풍망(凯风网)을 통해 신변에서 발생한 번전영이 치료 거부 및 사망 사실을 여러분들께 전하고저 한다.
번전영, 여, 한족, 1945년 8월 출생, 소학 학력, 나와 한 아파트단지에 살았다. 1995년 6월 퇴직후 심심하던 차 타인의 권유로 강신건체와 좋은 사람이 된다는 생각으로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경력이 풍부하고 식견이 넓고 기억력이 좋아 한때 정진한 법륜공인원으로 많이 알려졌다. 1998년전 우리들은 그를 /‘언니/’라 불렀다. 그러나 1999년 3월 그는 공우들에게 더는 자기를 언니라 부르지 말라 했다. /‘위/’에서 새로운 칭호를 내렸으므로 앞으로는 다들 자기를 보도원이라 불러달라 했다. 이렇게 우리는 몽롱한 가운데 무한히 숭배하는 마음으로 달갑게 보도원이라 그를 불렀고 그도 아주 기꺼이 그 칭호를 받아들였다.
2001년 7월의 어느 아침으로 기억된다. 그날 그는 나에게 일부 대법제자들이 먼저 원만하게 될 것이고 자기도 곧 원만하게 된다 넌지시 말해줬다. 그 소식에 나는 기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번보도원과 기타 대법제자들이 원만하는 장관을 목격하기 위해 나는 딸 보고 하루 학교에 빠지고 집에 남아서 나와 함께 /‘대법/’의 위력을 지켜보자 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침부터 황혼무렵까지, 또 휘영청 밝은 달밤에 별들이 총총히 빛날때까지도 여전히 번보도원 등이 원만하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쉴새없이 서성거렸고 불안한 마음으로 흥분하면서도 초조했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도록 번보도원 등은 원만을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번전영은 원만하지 못한 이유를 자신이 무엇인가 /‘놓친데/’가 있고 공법이 아직 /‘정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자기를 향해 찾았고 금후 일체 시간을 이용하여 높은 차원에서 수련하면 3-4년내에 꼭 원만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어느덧 3-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시종 원만을 이루지 못했어도 번전영은 원만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더더욱 심취됐다. 2006년 11월 18일 그날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그는 자기 집에 놀러간 나늘 거실에서 기다리라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20분이 지나도 아무 기척이 없기에 “반나절이나 되는데 왜 아직도 나오지 않아, 괜찮아?”하고 물었다. 그는 “괜찮아, 괜찮아”하며 말끝을 흐렸다. 평시의 번전영은 맺고 끊는 성격이고 말도 빨리 했다. 나는 은근히 불길한 예감이 들어 화장실 문을 열었다. 온통 피가 묻은 휴지를 손에 들고 쳐다보고 있었다. 폐경기가 지난지도 7-8년이 된 그가 월경일 수는 없을 것이고 깜짝 놀랐다. 나의 표정에 더는 숨길 수 없다 생각했는지 5개월이 넘도록 뒤를 볼때마다 피가 묻어나온다 했다. 남편이 병원에 가자 권했고 의사까지 모셔왔지만 그는 의사를 집에 들어도 오지 못하게 했다. 남편은 속수무책, 절망, 결국은 맥을 버리고 말았다. 이홍지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번전영은 사부가 /‘다른 공간/’에서 자기를 보호하고 있다 믿었다. 하물며 사부는 “대법에서 좋은 것을 얻을 생각만 하고 대법을 위해 기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신의 눈에 이런 사람들은 가장 나쁜 생명이다”했고 또 “사상경지가 조금이라도 제고되어 올라왔다면 자신의 나쁜 것들도 이미 조금 버린 것이다. 동시에 당신이 또 고생을 좀 겪고 고통을 좀 겪어 자신의 업력을 좀 없애버리면 당신은 조금 승화해 올라올 수 있다”하지 않았는가? 이로부터 그는 /‘업력을 좀 없애고/’ 심성을 제고하고 신의 눈에 가장 나쁜 생명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고생을 좀 겪는 것 쯤이야 두려울것 없지?라는 생각을 가졌다.
2007년 4월 21일 갑자기 번전영의 남편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번전영이 온몸이 아프다 신음하면서도 병원에 가려하지 않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나보고 건너와 달라했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번전영이 손으로 배를 짓누르고 구석에 쭈크리고 앉아있었고 이마에서는 콩알같은 땀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 시각 번전영의 반년간의 병통을 떠올리며 나는 순간적으로 이홍지의 /‘법신보호/’에 의문이 생겼다. 나는 즉시 한단시 중심병원의 외과 의사 황모 (번전영의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환자가 곧 도착할테니 대기하고 있으라 했다. 몇 시간이나 몸부림을 친 번전영은 이미 맥이 빠질대로 다 빠졌다. 우리는 번전영을 차에 태우고 한단시 중심병원으로 달렸다. 과연 진단 결과 직장암이고 대부분 암세포가 이미 전이되여 폐에 암세포가 가장 많으며 신체 각 부위 기능이 이미 쇠퇴상태에 이르렀다 했다. 의사는 길어 4개월밖게 살지 못한다 했다. 번전영이 기를 쓰고 병원에 남아 치료를 받지 않으려 했으므로 의사도 권하다 못해 약 처방을 떼주고 병원을 떠나도 더 막지 못했다.
2007년 7월 12일 나는 다시 번전영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번전영이 전신 경련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빨리 건너와 달라했다. 전화를 내려놓자 그들 집으로 줄달음을 쳤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번전영이 이미 금방 숨을 거둔후였고 아들딸이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불쌍한 번전영은 허무맹랑한 원만을 추구하여 이홍지가 치밀하게 설계한 올가미에 걸려 12년간이나 열광적이었건만 끝까지 이홍지 법신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