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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법 길에 참사한 여동생

2013-03-26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임봉민

 

 여동생 임금환

 

십언(十堰)시 방(房)현 성관(城关)진의 방현 식량국 가족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는 임봉민(任凤敏, 50세)입니다. 결혼전 저는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방현 화룡언 (化龙堰)진 화룡촌 2조에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농사일에 능수고 어머니는 현모양처로 저와 여동생을 보듬어 키웠습니다. 동생 임금환은 어린 나이에 착하고 약삭빠르고 말을 잘 들었으며 풀을 매는 등 아버지 일손을 많이 도왔고 우리 일가는 화목하고 행복했습니다.

 

1992년 여름 고등 중학교를 졸업한 금환이가 대학에 붙었지만 학비부담이 너무 커 걱정이 태산같았습니다. 가정 부담을 덜기 위해 겨우 20세의 동생은 의연히 남방으로 돈벌이를 떠났고 돈을 번 다음 대학 꿈을 이루려 했습니다. 얼마후 금환이는 심천(深圳)의 모 완구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았고 열심히 일하고 책임감이 강해 팀장으로 선발됐고 출근 첫 달 월급으로 아버지 어머니께 스웨터 하나씩 선물, 흐뭇한 어머니는 딸을 잘 키웠다고 여기저기에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1998년부터 동생의 행동이 좀 이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전화를 하더니 나중에는 몇 달이 지나도 전화 한통 없었습니다. 직장일이 너무 바빠서 그러려니 생각하던 어머니가 날이 갈수록 걱정돼 금환이와 한 기숙사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야 동생이 법륜공을 수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법륜공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에 직장일에만 충실하라고 동생을 권할 뿐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신생사물을 좋아하는 원인에서인지 동생은 쉽게 법륜공의 수렁에 빠져들었습니다. 초기엔 <전법륜>을 읽고 가부좌만 하더니 차츰 <전법륜>을 신명으로 모시고 사부는 석가모니의 환생으로 사람을 고층차로 이끌어 주며 그를 따라서 배우면 쉽게 층차에 오르고 고층차로 수련되면 성선성불(成仙成佛)할 수도 있다면서 많은 법륜공테이프와 서적들을 사들였습니다.

 

1999년 7월, 마을 간부를 통해 정부에서 법륜공수련을 금지한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그날 밤으로 동생한테 연공을 그만두라는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사부의 도움으로 자기가 한층차 더 제고됐고 원만과 더 가까워졌다며 자기를 방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999년 10월 26일, 동생이 몰래 사직하고 공우들을 따라 북경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직장도 없이 모았던 돈을 다 써버린 동생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밖게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동생은 날마다 사부와 법륜공에만 전념하고 식구들에게 무책임했으며 날마다 오전 9시에 일어나 가부좌하면서 사부님과 교류하고 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전법륜>을 읽고 여러번 베끼기도 했습니다.

 

꿈에도 생각지 않게 동생은 그 원만을 위해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2000년 4월 20일, 금방 28세 생일을 넘긴 동생이 가족들이 농사일에 바삐 보내는 틈을 타서 슬그머니 인근 공우들과 함께 북경으로 호법을 떠났습니다. 4월 26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북경으로 가는 차에서(풍대구의 어느 도로에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던 동생한테 갑자기 환각이 나타나 두 손을 펼치고 공중을 향해 허우적거리며 “법륜대법이 좋다”를 외치더니 불쑥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10여미터나 내팽개쳐 참사를 당했습니다.

 

동생 참사소식을 접하고도 믿어지지 않는다던 어머니는 골회함을 안고 들어서는 아버지를 보자 오열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동생을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원만의 길을 걷던 동생은 겨우 28세의 젊은 나이에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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