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성 단동(丹东)시 국경합작구 강해(江海)판사처 해룡촌(海龙村)은 중조 접경지대에 자리잡은 어촌이다. 조선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이 어촌은 국경 물물교역이 활발한 곳이다. 이 곳 국경 무역의 대종상품은 해산물이어서 가장 바쁜 사람이 해산물 중간상인데 그 중에서도 신용이 제일 좋고 유능하기로 이름 날린 사람이 요서심(姚书深)이다. 좋은 서비스로 숱한 거래를 성사시켜 농업, 농촌과 농민의 발전 수요에 따라 상인과 농민, 도시와 농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어촌이 넓은 시장에 직접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요서심도 해마다 6-7만원에 달하는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이렇게 유능한 농민 중간상이 5년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되어 있었다.
중조 국경선에 자리잡은 해룡촌, 맞은 켠이 이국이다
총명하고 유능해 농촌 중간상으로 활약
1955년 출생인 요서심은 해룡촌에서 나서 살아온 토박이 농민이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지만 영리한 두뇌와 고향의 우위자원을 빌어 수산물 시장에 뛰어들었다. 취급품목인 조개가 굵직하고 질 좋고 싱싱해 금세 심양, 대련, 북경 등 대도시 고객들의 신임을 얻었다. 이어 그는 조개가공, 물류, 수산물 판매 등 업종을 늘여 점차 수산물 규모생산 체제를 운영해 나갔다. 그래서 동네방네에 소문난 유명인사로 되었고 그의 생산활동, 판매능력, 중계역할이 농민들에게 모모범과 선도적인 역할로 이어졌다. 농민들이 부유해지고 요서심의 자산도 끊임없이 축적되어 1997년에 가정 예금이 백만 원에 달했다.
해룡촌
건강 갈망, 법륜공에 잘못 빠져
수산물가공이 한창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었던 1997년 4월, 동항(东港)시에서 불청객 몇 명이 이 마을을 찾아왔다. 앞장선 사람이 동네 유씨네 친척이었다. 의료전문용 흰 가운을 차려 입은 그들이 병원의료진과과 같았다. 마을에 들어서자 부두에서 기공을 설명했는데 법륜공을 연마하면 강신건체(强身健体)뿐만 아니라 병을 예방하고 제거하며 /‘좋은 사람/’되도록 가르친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어민들에게 대흥안령(大兴安岭) 삼림 화재도 기공으로 진화되었고 다년간 전신마비로 드러누웠던 길림성의 한 할머니가 법륜공을 연공한지 6개월 만에 침대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북경의 한 간암환자는 연마 8개월 만에 병이 완치되었고 혈압이 150에서 250까지 올랐던 단동시의 한 교사는 연마 3개월 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신비스럽게 말했다. 이어 어민들에게 노란색 작은 배낭을 나눠줬는데 그 속에는 <전법륜> 한 권과 녹음 테이프 하나씩 들어 있었다.
단동 해룡촌 부두
평시 위궤양을 앓고 있던 요서심은 그들을 의사로 알고 주동적으로 찾아가 늘 속이 쓰리고 신물이 나며 식욕과 체중이 떨어지고 빈혈 증상에 가끔 구토까지, 대변이 아스팔트타르 같이 검고 끈적끈적하다 등 증상을 털어놓으며 원인을 물었다. 그들은 이 병이 /‘허병(虚病)/’이라는 /‘업력(业力)/’이 너무 중해 생긴 병인데 이런 병은 주사나 약이 필요 없이 연마를 통해 /‘발공/’을 하면 치유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소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 또한 /‘허병/’이라기에 그는 감히 더 묻지도 못했다. 어민들은 대개 신에 대한 공경심을 갖고 있기에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가방을 받았고 실험삼아 30여명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 광장에서 법륜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두 달 가량 수련하고 봄철 현지 음식습관에 따라 매일 합리적으로 음식을 조절하고 술을 절제하자 위통이 경감되고 대변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흥분한 나머지 동항시에서 온 법륜공보도소 소장에게 알렸더니 소장은 그들이 집단 /‘발공/’을 한 덕이라고 말했다.
철저히 치유하려면 본인이 더 열심히 연마해야만 사부 이홍지의 말과 같이 “흑색물질을 백색물질로 전화”시킬 수 있다며 당신의 대변이 흑색에서 정상 색상으로 변한 것이 /‘소업/’이 효과를 본 덕이라고 소장은 말했다. 그 후부터 요서심은 법륜공을 믿고 거기에 의탁하게 되었다.
그때 연공 장소
경건하게 정진(精进)하여 정신질환 환자로 수련
소장은 그의 “층차를 제고시키기” 위해 법에 집념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매일 가부좌하고 앉아서 /‘보서(宝书)/’(<전법륜>)를 통독해야 한다고 훈고했다. 정성과 /‘사부/’에 대한 숭배와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 요서심은 거실에 이홍지의 사진을 걸어놓고 향을 피우고 모배하고 <전법륜>을 읽고 녹음을 청취하고 등을 매일 기공 연마 필수 일과로 간주했다. 점차 그는 /‘발공/’과 일념 통제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껏 공을 연마하고 법을 학습하고 주변인들의 교란을 피하기 위해 성격이 활달하던 그는 외계와 담벽을 쌓았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자 일념에 완전 통제되어 /‘소업/’, /‘층차 제고/’, /‘원만/’등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고 /‘천국세계/’로 조속히/‘백일비승(白日飞升)/’할 수 있기를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일념의 암시로 요서심에게 차츰 환청, 환각과 망상증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일 어떻게 하면 사부에게 수련에 대한 자신의 경건한 마음을 알릴 것인가만 지나치게 명상하다 보니 원래 있었던 심신증상이 심해지고 정신장애를 유발시켜 조병, 초조와 우울증상이 나타났지만 연마에 전념하기 위해 그는 모든 장사를 넷째 동생에게 떠맡기고 동수(同修)들과 은밀히 만나 기공 연마와 /‘법 학습/’ 체험 나누기에만 전념했다.
기공을 연마하는 동안 늘 몸이 가볍게 비약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요서심이 말했다. 환각에 가리워진 채 계속 환각만 추구하다 보니 그에게 자연스럽게 인격 분열과 사유혼란이 생겼다.
현재 요복증(姚福增)이 운영하고 있는 식량매점
1999년 구정은 어촌에서 마조(妈祖)(그 지역에서 신봉하는 바다신)를 영송(迎送)하는 가장 떠들썩한 날이다. 떠들썩한 판에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요서심이 그날도 두문불출했다. 기공 연마 후 요서심이 괴벽해지고 사람을 피해 멍하니 앉아 혼자 웃고, 설 인사를 하러 온 친척들한테 너무나 냉담하다는 것을 놀러 온 친척들은 발견했다. 설 대목에 접어들어서 날마다 이것저것에 의심만 짙어지고 정서가 변덕스럽고 가족들에게 적의를 품고 무턱대고 아내에게 화를 내곤 왔다. 그리고 매일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고 온 종일 세수도 안 하고 낮과 밤이 바뀌고 집기들을 마구 부시고 이유 없이 떠들고 욕설을 퍼붓고 횡설수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정월 초이튿날 가족들이 둘러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거품을 물고 “사부님, 저는 진전(真传)입니다”고 외치며 온돌에서 뛰어내려 주방으로 달려가 석탄 푸는 삽을 주어 들고 TV를 내리 찍고 아내를 찍어 피투성이로 만들고 아들도 그가 휘두르는 삽에 팔을 다쳤다. 치고 부시는 요란한 소리에 놀란 이웃들이 그의 집에 강도가 든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말에 조리 없고 횡설수설 하는 요서심을 본 해룡국경파출소 소장은 정신질환으로 추정, 즉시 단동 정신병병원과 연락을 취했다. 검사 결과 과연 고 위험성 정신질환환자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단동정신병원 전문가의 해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신질환분류와 진단표준> 제2판에 이미 기공연마로 인한 정신장애라는 내용이 추가되었고 요서심은 장기적인 기공 연마와 암시로 말미암아 환청, 환각과 망상, 지각 장애가 생기고 여러 가지 혼란한 사유의 지배하에 사유가 산만하고 정서가 불안정적이어서 자해 혹은 타인에 대한 상해를 저지를 수 있으며 법륜공의 세뇌자극을 크게 받아 심리적으로 /‘백일비승(白日飞升)/’에 극히 강렬한 욕망과 스트레스가 생기는데 이를 심리학에서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한다. 심리적인 스트레스 반응은 두뇌피층의 기능을 변화시켜 대뇌 변연계통에 영향을 주며 부신피질 호르몬, 생장 호르몬, 프로락틴 호르몬 등의 분비가 증가되어 급격히 절정에 달하는데 이런 변화가 일정한 정도에 도달해 인체의 조절능력을 초과하면 심리 밸런스 상실과 뇌기능 활동 혼란을 야기시키고 나아가 정신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5년동안 요서심은 가계 저축을 다 말아먹고 해룡촌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국가에서 1999년에 이미 법륜공을 금지했다. 퇴원 후 병이 자꾸 도져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내가 도로변에 식량상점을 차려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퇴직 나이가 된 요서심은 그나마 해룡촌의 정책에 따라 달마다 몇 백 원의 퇴직금을 탈 수 있다.
90년대의 백만장자가 지금 아내가 경영하는 식량상점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날의 경제발전의 선두주자 말을 꺼낼 때마다 해룡 마을 사람들은 아쉬운 한숨을 터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