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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한다는데, 비운의 참극 왜서 일어날까

2009-10-28 Auteur:본지 기자

파룬궁으로 인한 비운의 참극 수차 생겨 사회의 불안정요소로 대두

최근 몇 년래 일부 국가의 국민들 중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국민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거나 지하철 역 혹은 길거리에서 파룬궁 관련 책자나 신문 혹은 영상물을 열심히 배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중 재한 조선족동포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적지않은 국민들은 이들이 왜 파룬궁에 그렇게도 미련을 갖고 있는가에  문의하고 있다.

일전에 필자는 중국 출장차 파룬궁으로 인한 비극이 중국사회에서 적잖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 파룬궁으로 인한 참극이 생긴 사실을 알고 나서 필자는 파룬궁 수련이 도대체 행복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불행을 주고 있는가에 의문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럼 왜 이 같은 비운의 참극이 수차 생기게 되는가?

함께 몇몇 사건의 발생 된 그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1,스스로 “교주”임을 증명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

2007년 8월 8일 7시 40분경, 이용삼이라는 젊은이(1971년5월2일 생, 남, 조선족, 고등학교 졸업)는 자기가 파룬궁의 “교주”임을 증명하기 위해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조양천진 팔도촌 이화상점 앞에서 미리 준비했던 도라이바로 세상에 태여난지 4년밖에 안되는 양진우라는 남자애(조선족)의 목과 가슴을 마구 찔러 무고하게 숨지게 한 악성사건이 생겼다.

그럼 왜 이용삼이라는 이 젊은이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저질렀을까? 혹여 정신이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중국 현지 경찰당국에서 조사한데 의하면 이용삼은 신체발육이 아주 정상이고 지능상태도 아주 좋은 젊은이다. 그런데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 점차적으로 파룬궁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용삼은 이렇게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파룬궁홍보물을 도처에 살포하다가 2004년도에 연길시 공안국에 나포되어 교화소에서 2년간의 교화를 받게 되었다. 교화소에 들어간 이용삼은 단식하는 등 각종 수단으로 교화를 거부하다보니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관계당국에서는 그의 건강이 염려되어  불구속하고 그해 7월 달에 집에 나와 병치료를 받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집에 나온 그는 지속적인 파룬궁수련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파룬궁 수련을 하면서 그는 자기가 이미 만물의 영장“교주”로 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이렇게 살인사건을 저질렀던 것이다.

촌민들의 말에 따르면 이용삼은 파룬궁 수련을 하면서부터 정신이 이상하게 돌았다고 한다. 이용삼의 어머니와 형 이용만에 따르면 이용삼은 파룬궁을 수련하면서부터 서로 대화하기를 꺼려했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쇠망치로 집안의 텔레비죤 수신기나 냉장고를 마구 부수어 버리기 일쑤여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에 큰 타격을 줬다.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온화하고 단란하던 가정은 아들의 파룬궁 수련으로 풍비박산되는 수밖에 없었다.

살인을 저지른 후 경찰에 연행한 뒤에도 이용삼은 “나는 /‘교주/’이므로 사람을 죽여도 내가 죽지 않기에 뭇사람들 앞에 내가 /‘교주/’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어린애를 살해했다. 내 힘으로는 아직 성인을 살해하기에 힘들기에 어린애를 우선 살해했다. 이렇게 살인해도 내가 죽지 않으면 /‘교주/’가 틀림없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만약 뭇사람이 없는데서 살인하면 나를 /‘교주/’라 증명할 사람이 없지 않은갚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되풀이 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살인사건인가?

비참하게 숨진 양진우 어린이 할아버지 동생 양태길 씨에 따르면 어린애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해된 뒤에 어린애 어머니 김희자는 당장 실신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지금까지 병원신세를 져야했고 어린애의 할아버지와 누나는 고향을 떠나 한국에 가기로 맘먹었다. 그들은 한국으로 가기 전 “남의 집 어린이를 볼 적마다 다른 어린이를 기르기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가슴이 미여지는 것 같아 고향에서 이렇게 더는 살수는 없기에  떠난다”고 했다. 아버지 양종철 씨도 더는 정든 고향에서 살 마음이 꼬물만치도 없어 그 이듬해에 한국행을 택했단다. 그후  양종철 씨는 처 김희자와 이혼하게 되는 또 다른 불행을 낳게 되었다.

2,파룬궁 수련자인 한 조선족 한국서 사고로 사망

한 조선족(남 1951년3월10일 생, 대학 졸업)손모는 2000년8월 달에 한국에 노무로 일하러 나갔다. 그는 한국에서 파룬궁 행열에 다시 가담해 파룬궁 수련에 온몸을 투신하다가 2007년1월 달에 한국의 한 회사에서 생산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워낙 손모는 1996부터 중국에서 파룬궁수련을 하기 시작했다.1999년7월20일부터 중국정부가  파룬궁을 이단 종교로 점찍고 취체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암암리에 지속적으로 파룬궁수련을 했던 것이다. 손모가 수차 외지에 가서 파룬궁 수련을 하려는 기미를 알게 된 처는 가정불화와 어린이의 장래를 고려해 남편을 극구 외지에 가지 못하도록  말려왔다. .남편의 지속적인 파룬궁 이념에 어쩌는 수가 없다고 판단한 처는 여동생에게서 6만위안을 빌려 남편을 한국으로 보내는 최악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간 손모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지속적인 파룬궁 활동을 멈추지 않고 체류하고 있다가 2007년1월 생산사고로 사망했다.

손모의 처에 따르면 남편이 한국으로 간지 10여년 되지만 집에는 돈 얼마 부쳐 오지 않았으며 사망 배상금도 얼마 받지 못하고 사망처리를 한 뒤 귀국길에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소개에 따르면 그가 일하던 회사의 사장도 한국파룬궁 수련자골간으로서 2007년12중순께  이른바 “진상을 말한다”며 한국의 몇 개 지역을 돌면서 재한 조선족들에게 파룬궁을 퍼뜨리다가 집으로 오던 도중 교통사고로 머리를 상해 사망하는 비운이 생겼다.

3,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파룬궁 수련자 남편 살해

2004년6월10일 18시경, 이명영이라는 여성 (31살))이 용정시공안국 안민2파출소에 찾아와 자기가 남편 경도(35살, 용정시라디오TV방송국에서 근무)를 살해했다고 자수했다.

이명영은 처음에 남편이 늘 자기를 학대하기에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경찰은 조사 중에 의심되는 점들이 많아 조사수위를 높였다. 결과 6월11일 아침 4시경에 범죄사실을 이실직고하고야 말았다.

워낙 이명영과 남편 경도는 모두 파룬궁 수련자였다. 중국 당국에서 수차 교양을 했지만 파룬궁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암암리에 파룬궁수련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2004년 5월부터 이명영과 남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견이 서지 못하다고 판단되면서 자기들 몸에 “귀신”부체가 붙었기에 주견이 서지 못한다는 이념을 갖게 되었다. 하여 5월부터 6월 상순사이에 이명영은 선후로 4차나 남편의 “귀신”부체를 없애려고 몽둥이로 때리고 나서 손으로 목을 눌러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뒤 인공호흡로 소생시키는 수단으로 수련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남편도 처 이명영에게 같은 방법을 썼다. 초기에 손으로 목을 누르는 방법으로는 상대방을 혼수상태에 빠뜨리지 못하게 되자 아예 끈으로 목을 조르는 방법을 썼다. 이런 방법으로도 “귀신”부체를 없애지 못한다고 판단한 그들 부부는 자기들의 수련에 허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6월8일에 자기들보다 수련공법이 강하다는 왕효옥(남 27살,이명영 여동생, 이명화의 약혼 남)을 찾아갔다. 그러나 왕효옥은 아무런 답복도 주지 않았다.그러자 6월6일 저녁 8시경 이명화 (여,27살,용정시 사영업체)가 힘을 합쳐 그들의 “귀신”부체를 없애자고 권고하고는 왕효옥과 이명화는 이명영 집으로 찾아와 이명영내외의 “귀신”부체를 없재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왕효옥과 이명화는 이명영 내외가 수련공법이 깊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른바 돕지 않고  그대로 그 집 침실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명영과 남편은 수련공법이 깊지 못하다고 하니 아예 둘이서 대청에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거듭되는 이른바의 수련에 감화되었는지 저녁11시경, 이명화가 침실에서 대청에 나와 수련을 돕는 다면서 몽둥이로 이명영의 잔등을 수차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명영은 동생 이명화가 자기를 위해 “귀신”부체를 뗀다고 판단하고 모진 아픔을 참아가면서 뻗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이명화가 언니인 이명영의 부체를 없앴다고 판단하고 다시 몽둥이로 이명화의 남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도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게 되니 왕효옥이 침실에서 나와 경도를 보고 “아픔을 참지 못하면 /‘귀신/’을 쫒아내기 힘들다”며 이명영과 이명화더러 끈으로 남편의 손과 다리를 묶으라고 지시한 뒤 이명영이 남편을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한편 이명화도 위생실에서 몽둥이를 얻어가지고 나와 함께 경도를 때리기 시작했다. 경도는 시종 아픔을 참지 못하고 아우성 쳤다. 그러자 옆에서 지휘하던 왕효욕은 경도의 “귀신”부체는 주로 음부에 집중해 있기에 이명영과 이명화에게 경도의 음부를 집중적으로 때리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4시간이나 지속한 결과 경도는 드디어 혼수상태에 들어갔다.

6월9일 새벽 2시경, 왕효옥은 이명영과 이명화에게 명령을 내려 경도의 피못으로 된 옷을 벗기게 하고 대청 바닥에 경도의 몸에서 혼건이 흐른 피를 닦게 했다. 경도의 옷을 벗기자 왕효옥은 경도의 음낭피부가 파열되어 바깥으로 피부가 번져 진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왕효옥은 음낭피부를 잘라버리지 않으면 경도에게 고통을 준다면서 이명영더러 가위를 가져오라고 하고나서 가위로  음낭피부를 썩둑 잘라 쓰레기통에 처 넣었다. 연후 이들 3명은 경도를 구급하기 시작했다.

그날 오전 7시경 경도 모친(파룬궁 수련자)도 경도 집에 와보고 아들 경도가 혼수상태에 빠져 깨여나지 못하자 함께 구급에 달라 붙었다. 이렇게 이른바 구급하기를 근 하루, 그러나 6월1일 아침 4시까지 경도는 소생하지 못했다. 일이 상서롭지 못함을 느낀 이들 4명은 공안당국이 이른바 파룬궁 수련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명영 집에 있는 파룬궁관련 책자 및 기타 물건 51개를 경도모친에게 넘겨 주면서 연길시 소영진 화룡촌 집에 보관케 했다. 그리고 나서   이명영이 공안당국에 자수하기로 공모했다.

참으로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중국에서 실질 생긴 것이다.

4,사색의 여울

필자가 취재하면서 이한 파룬궁으로 인한 살인사건들은 단지 연변에서만 생긴 것이 아니고 중국의 기타 지역에서도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에서 취재한 몇가지 인명사건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즉 진정한 교주로 되자면 부체를 없애기 위해 살인을 서슴치 않는다는 것이고 또 상대방도 진정한 교주로 변신시키자면 그들의  몸에 붙은 부체를 함께 없애야 줘야한다는 것이다. 오직 부체를 없애야만 진정한 파룬궁신봉자로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현대 문명이 바야흐로 진행되는 오늘의 이 현실 속에서 이런 끔찍한 살인 사건들이 비일비재로 생기고 있다는 것은 냉철한 사고로 심사숙고 할 때가 왔다.신앙은 어느 누구도 자유다. 그러나 신앙은 궁국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을 취재노트를 덮으면서 심심히 느끼고 있다.

설흔,박도 2009년 5월31일 연길에서

http://www.dbanews.comews/read.php?idxno=1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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