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자(小来子)”란 법륜공 사교 교주의 어머니 노숙진(芦淑珍)이 이홍지에게 지어준 아명인데 그가 열살 되던 해 부모가 이혼하면서부터 이홍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삶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어머니, 열악한 훈육 환경 속에서 성격이 편집적으로 나가고 비현실적인 이상만을 꿈꾸며 자랐다. 그래서 노숙진은 허풍만 떤다고 늘 아들을 꾸짖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홍지가 처음으로 공을 전수하고 병을 치료해서 번 돈을 시위하듯이 어머니 면전에 던졌다. 돈에 대한 갈구를 잘 표현하는 장면이다. 이홍지는 태국에서 불교 기본이론 등을 접촉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다. 불교 명의로 공을 전수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귀국 후 1992년부터 나서서 법륜공을 전수하는 부정 축재 계획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법륜공 전수 명의로 축재가 시작되었는데 그 수단이 음험하고 잔인했다.
강습반 수료 기념사진
NO1: 강습반 개강+판매 후, 버젓이 어부지리를 얻다
1992년 법륜공 전파 후 이홍지는 돈 벌 궁리만 했다. 불법으로 “법륜대법연구회”를 설립하고나서 중국기공과학연구회, 국가체육총국에 등록 신청을 했지만 허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이 연구회 명의로 기공을 전수하고 강습반을 개강하고 활동을 조직했다. 각종 활동을 통해 비용을 받고 법륜공 서적과 연공용품을 판매하고 강습반 개강, 도서 출간, 연공용품 등 원스톱 산업 사슬을 구축해 돈을 벌었다.
당시 북경지부 총괄을 맡았던 탕학화(汤学华)의 진술에 따르면 1992년 말, 이홍지가 법륜공 북경지부를 설립하고 그를 지부장으로 임명하고 그 밑에 부 지부장 4명을 임명했다. 당시 법륜공 본부는 총무팀, 공리공법(功理功法)팀, 홍보팀 등으로 구성되여 법륜공 제반 운영과 각 성 시 강습반 개강 등 업무 연락을 담당하고 기타 법륜공에서 조직하는 모든 활동과 사무성적인 업무는 북경지부가 담당했다고 탕학회가 진술했다. 이홍지가 1992-1993년에 북경에서 법륜공 강습반 총 13기를 개강, 매기 10일씩, 전국 범위 내 약 56기를 개강, 1인당 수강료 40원씩 받았는데 당해 강습반 수입만 150만원을 웃돌았다. 1994년 - 1997년 사이에 전국 여러 곳에 보도소를 설립하고 곳곳을 전전하며 법륜공 강습반을 개강하고 이홍지 본인이 직접 학원들에게 강의, 몇 년간 약 300기를 개강, 강급반 입장료 수입만 해도 1000만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장소 임대비용 외의 모든 수입이 이홍지 개인 주머니에 들어갔다.
이홍지 초상화
1994년 이후 사욕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이홍지는 학원들과 연마 인원수가 많아지자 수익을 창출하고 위상을 높이고 홍보전에 가세하기 위해 자신의 초상화를 만들고 연공복, 연공 매트, 호신부를 통일 제작해 연공장소와 자택에 일률로 초상화를 걸게 하고 연마시 반드시 연공복을 입어야 하고 외출시 호신부를 착용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연공복 한 벌에 30여원, 초상화 한 장에 5원, 연공 매트 하나에 10원씩 팔았는데 이 부분의 수입은 집계가 불가능하다. 각 지역 보도소는 이런 판매수입을 전부 이홍지의 북경 “법륜대법연구회” 계좌로, 실제 이홍지 개인 계좌에 입금시켰다. 강습반 개강 횟수가 많아지면서 책을 출간해 판매하는 게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이홍지는 “전법륜”, “법륜불법” 등을 편집 출간해 1인 1권을 강요하고 그가 예전에 강습반에서 한 강의 녹음을 녹화테이프, 녹음테이프로 제작해 학원들에게 팔았다. 1992년부터 1999년 말까지 이홍지 명의로 인쇄 발행한 법륜공 서적이 1057만권, 영상 제품이 500만개, 사진 129만장, 총 매출액이 161억원에 달하고 이홍지와 법륜공이 불법 이득 4100만원을 챙겼다. 그리고 <법륜공문제편람>에 따르면 “이홍지 및 법륜대법연구회가 1992년부터 1999년 말까지 법륜공 홍보품을 팔아서 순이익 4220만원(RMB)을 확보했다”고 한다.
법륜공 웹사이트에 공개 판매되고 있는 서적
1998년 이후 이홍지가 미국에서 안젤라(ANGELA)라는 출판회사를 설립했는데 주소지가 제임스 본과 법륜공 중견 장을평(张尔平)의 예전 가정주소로 등록되었다. 해외에서 법륜공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하는 법륜공 서적이 권당 11달러 이상, 인민폐로 환산하면 80원 넘는데 그 수입이 어림잡아도 엄청난 액수다.
이홍지 북경 체류시 구입한 승용차, 주택, 고가 소모품
이홍지는 강습반을 개강하고 연공 용품을 팔아서 숱한 돈을 모아 북경시 조양구 쌍교동로(双桥东路)18호 1138동 별장을 구입하고 북경시 서성구 불화사(法华寺), 북경시 통주구 동욱화원(东旭花园), 길림성 장춘시 조양(朝阳区)구 개운(开运) 등 아파트단지 내 아파트를 구입했다. 1990년대 이홍지와 아내 이서(李瑞) 두 사람 다 동북 장춘시 기업의 일반 평사원이었는데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었겠는가, 자금 출처는?
NO2:의료행위+기부, 마음 편히 가만히 앉아서 남이 거둔 성과를 누리다
이홍지는 시드니 <아주주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무조건 사람들을 도와 병을 제거해 주고 금전이나 물질적 보수는 전혀 받지 않았다”고 했는데 사실이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이홍지는 법륜공을 수련하면 병이 치유된다고 제멋대로 떠들고 자신에게 대단한 기능이 있다고 고취했다. 1992년6월21일 이홍지가 북경건축자재강당(建材礼堂)에서 강의를 하면서 “한 곱사등이의 등이 심하게 굽었는데/…/…내가 보고 손바닥으로 다섯 번 두드리고 한번 밀어주니 굽은 등이 즉석에서 펴졌다”고 말했다. 조기 설법에서 이홍지는 “사부가 손 한번 흔들면 폐암말기 환자도 완치된다”, “대련에서 발공했는데 멀리 프랑스에 있는 식물인간이 침대에서 내려 걸었다” 등 자신을 “신의(神医)”로 포장했다. 자신이 다른 공간에서 왔고 법륜공을 “연마하면 병이 치료되고 수련하면 약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고취했다. 이홍지의 고취에 많은 환자들이 정규 치료를 포기하고 진료를 받으려고 이홍지를 찾아왔다. 이홍지는 자택과 보도반 현장에 공덕박스(功德箱)를 설치하고 제자들이 주동적으로 돈을 넣게 하고 번마다 진료비용 50원에서 200원 정도를 받았다. CCTV의 보도에 따르면 한 할머니가 5원내고 병을 봐달라고 애원하는데 이홍지가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5원 내고 병 볼 생각을 하느냐”고 독살을 피웠다고 한다.
병을 봐 주는 돈 벌이가 축재 과정이 너무 느리고 또 이홍지의 본의도 아니었다. 그는 병 치료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고 영향력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법륜공을 믿게 해 자발적으로 더 많은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어주게 만드는 게 이홍지의 진실 의도였다. 이홍지의 매부 손삼륜(孙森伦)이 직접 돈을 버는 이홍지의 비범한 술책을 목격했는데 한번은 “법회”를 마치고 이홍지가 학원들에게 “법륜공은 최고 층차의 공법이지만 여러 분의 지지가 필요하므로 적극적인 기부를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기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기부 액수도 많지 않았다. 그러자 이홍지가 “화교단체에서 많은 돈을 법륜공에 기부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고 있고 액수도 상당히 크다. 이런 선행으로 인해 복 받게 될 것이다”, “여러 분이 결코 정진(精进)하고 공을 자라게 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공덕박스에 더 많은 돈을 넣었다. 길림성 장춘시 전 법륜공 수련자 이아겸(李亚谦)은 1998년10월에 법륜공 대련보도소 소장이 이홍지에게 닛산 승용차 한 대를 기부했다고 증언했다. 전 지박(淄博)열전기유한공사직원 두왈중(杜曰仲)은 이홍지의 정신통제로 인해 “층차에 오르고” “원만”을 이루기 위해 선후로 10만원 가까이 사기 당해 가산을 탕진하고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섬서성 주지(周至)현의 고춘양(高春阳)은 90년대 구십곡(九十曲)촌에 이름난 사장인데 법륜공을 수련하면서 소유하고 있던 거액의 재산을 법륜공단체에 헌납하고 “홍법”다니면서 다 날리고 결국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뱅이로 전락했다.
이홍지의 딸 이미가(李美歌) 소유 뉴욕 퀸구 플러싱59가 별장
NO3: 매국+경영, 즐거운 호화 생활
미국에 도주하자 이홍지는 해외 정치세력에 빌붙고 미국의 반(反)중국 세력에 매수됐다. 미국이 위경생(魏京生) 족속들이 더는 이용 가치가 없다 판단하는 시점에서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또 하나의 비장의 카드로 그를 이용했다. 미국은 이홍지와 법륜공 중견들에게 정치적 망명을 제공하고 그들을 “법륜대법방송국”과 TV제작센터, 웹사이트를 설립하고 방송체널을 임대하고 홍보품을 인쇄하여 반중국 선전선동을 감행하는 반중국 선두주자로 키웠다. 이런 결과가 이홍지의 생각에 딱 맞았다. 신변 안전를 보호해 주는 바람막이가 생기고 축재에 유리한 상업 기회도 생긴 셈이다.
1. 횡령으로 축재. 이홍지는 주인의 환심을 사면서 돈도 벌겸 해외 여러 지역에 “법륜공신문사, 대기원시보, 명혜망, 희망의 소리 방송국, 신당인TV, 박대출판사, 신주영화제작소, 신운예술단, 비천예술학교” 등을 핵심으로 하는 완벽한 반중국 선전 시스템을 구축했다. 법륜공은 또한 100여개의 전문 사이트를 개설하고 300여개의 지방성적 글로벌 온라인시스템을 구축하고 “신룡공작대”를 만들어 기술지원을 했다. 해마다 이런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직원들 급여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2억 달러에 달한다. 그리고 “법회”, “반중국 시위” 등 활동비용과 법륜공 총부 조직을 운영하는 기타 비용까지 합하면 무려 5억 달러에 달한다. 이런 비용 대부분이 “미국국제개발서”, “대만민주기금회” 등 정부와 비정부 단체에서 제공하는데 이런 비용을 이홍지 혼자서 통제하고 재무담당 모두가 그의 절친이거나 직계 친척이다. 약아 빠진 이홍지가 감시하는 척 하면서 떼 먹지 않을 수 없으며 부수입 얼마든지 건지고 싶을 대로 건진다.
2. 프로젝트 추진을 이용해 축재. 2006년 “로스안젤스 설법”에서 이홍지는 “신당인TV만회를 주최해 돈을 좀 벌면 좋은 일이 아니냐?”하고 2007년 “호주학원설법”에서 “우리가 이미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 돈 일부를 복리비용으로 이용해도 된다. 차후 당신들이 돈을 많이 벌면 수익 좋은 회사로 돼 사회평균 급여 수준으로 가져가도 나는 기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상황이 아니다, 프로젝트 참여자 대부분이 법륜공 구성원이 직원으로 일하는데 의무노동을 하고 심지어 개인 지갑을 열어 법륜공의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법륜공 내부인원에 따르면 매년 법륜공이 프로젝트를 통해 창출한 이윤이 5000만 달러를 초과하고 그 전부가 법륜공 총부에 들어가는데 실은 이홍지 개인 주머니에 들어간다.
이홍지가 기부 받은 뉴저지주 부동산
3. 기부금을 통해 축재, 2007년 “호주 학원설법”에서 이홍지는 “신문, 방송국, TV방송국, 웰사이트 모두가 대법제자가 속인사회를 기반으로 설립한 속인사회 형식의 회사이므로 제자들의 협찬을 받아도 좋다”고 했다. 1991년11월1일 “월스트리트저널”이 이홍지가 뉴저지주 프린스턴대학교 인근에 있는 600평방미트 부동산을 그의 아내 이서의 이름으로 등록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홍지는 미국 램프제조업체의 법륜공 추종자가 58만 달러를 들여 그에게 기부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홍지는 해외 법륜공 제자의 돈과 귀중품도 기부 받는데 이 부분의 집계나 추계가 불가능하다.
이홍지의 별장과 고급차
몇 년간의 경영을 통해 이홍지와 아내, 딸 등이 미국에 부동산 11채 이상을 소유하고 고급차도 여러 대, 가치를 따지면 1000만 달러를 넘는다. 법륜공 총부 용천사만 해도 가치를 따지면 2400만 달러가 된다. 현재 이홍지는 명실공히 억만장자로 30년 전의 가난한 소년과 천양지차다. “혈수성령(血水圣灵)”의 교주 좌곤(左坤)이나 “전능신(全能神)”의 교주 조유산(赵维山) 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상대다. “소래자”의 축재 수단이 정말로 이만저만이 아니다.
(책임편집: 울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