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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공이 나를 살인범으로 만들었다

2010-09-02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유설미

나의 이름은 유설미, 조선족, 1981년 출생, 전문대학 졸업, 길림성 장춘시 구아(欧亚)매장 영업원, 장춘시 경개구에 거주. 남편의 이름은 김명탁, 조선족, 1976년 2월 출생, 고중 졸업, 장춘시 제1자동차대중(一汽大众)회사에 근무, 2004년 2월 아들 출생, 총명하고 영리하며 귀엽게 커갔다.

이토록 행복한 우리 일가는 우리 두부부가 법륜공에 중독되는 바람에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나의 남편 김명탁은 이른바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반대하며” “원만을 추구”하기 위해 법륜공전단지를 제작해 붙히고 배포해 2008년 4월 법적처벌을 받았고 나는 사부의 /‘호소/’을 받들고 하루빨리 /‘원만/’하기 위해 다른 세사람과 결탁하여 법륜공수련자 초영(肖荣)을 도와 /‘마 제거/’를 실시, 결과 그를 무참히 살해, 무기징역을 받았다.

남편 김명탁은 1997년부터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2003년 3월 결혼후에도 계속 수련했다. 당시 매체에서 법륜공을 적발비판하는 내용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남편이 집에서만 <전법륜>을 들고 중얼대고 밤에 가부좌하는 외에는 /‘법학습/’이나 /‘집회/’행사에 일률로 참가하지 않았기에 나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2003년 12월, 친정 어머니가 51세 젊은 나이에 간암말기 진단을 받은지 1개월만에 세상떴다. 무남독녀인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그 불행에 더없는 고통에 빠졌고 세상의 생노병사에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종일 불안에 떨던 바로 그때 남편한테서 <전법륜> 등 책들을 넘겨받았다.

이홍지는 책에서 “병이나 모든 불행이 생기는 근본원인은 업력때문이다”, “진정한 수련인은 병이 없다/…/…당신이 연공했기에 말이지 연공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언녕 황천객이 되었을것이다”(이홍지의 녹음설법), “장래에 수련 성취했을 때에 무엇을 가지려고 손만 내밀면 곧 오고 무엇을 가지려면 무엇이 있으며 무엇을 하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데 그의 세계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 말했다.

세상에 과연 이런 좋은 일이 있단 말인가? 법륜공을 수련하면 /‘소업/’할 수 있고 병에 걸려도 약을 먹을 필요 없고 /‘원만/’후에도 /‘복보(福报)/’와 /‘백일비승/’을 할 수 있고/…/…

나는 신임하지 않던데로 부터 점차 반신반의하게 됐고 최종 법륜공에 빠지게 됐다. 지어 수련을 늦게 시작한 자신을 후회하기도 했다. 일찍 수련하고 혹은 어머니와 함께 수련했다면 사부님 /‘법신/’의 보호를 받아 어머니가 이토록 일찍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련만/…/…

얼마간 수련후 나는 어머니를 여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우리부부 사이에도 공동 /‘취미/’가 있게 돼 남편은 매일 퇴근하자 집에 돌아와 나와 /‘법학습/’ 심득교류를 진행, 둘 사이는 다투는 일도 없었다. 나는 /‘법 학습/’의 취미를 만끽 향수했다.

2007년 여름 남편의 소개로 나는 /‘깨달음/’이 극히 높은 고홍경(1975년 출생, 고중 졸업, 제1자동차-대중회사 종업원)과 왕해붕(1976년 출생, 고중 졸업, 제1자동차-대중회사 종업원)을 알게 됐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 부부는 법륜공에 더더욱 심취됐다. 그때 나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꿈에서 세계곳곳을 다니며 /‘설법/’하고 나한테 /‘기연(机缘)/’을 중히 여기고 계속해서 /‘정진/’하고 하루빨리 /‘원만/’하라 타이르는 이홍지를 만났다.

고홍경과 왕해붕은 모두 남편의 동료고 또 우리 세집 거리는 아주 가까웠으므로 /‘동수/’로 우리는 자주 함께 모여 피차의 /‘심성관/’과 각자 꿈에서 본 이야기를 교류했다. 사부님이 “꿈에 본 정경은 사실 모두가 당신의 원신이 진정으로 거기에 갔기 때문이므로 진실한 것이다”(<전법륜>)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주이(周易)가 해몽하듯이 꿈속에서 사부님이 뭘 점화했는지 깨달으면서 마주앉아 맞장구치고 도취됐다. 사부님이 깨달음이 어떻든 다 빗나가지 않는다 했기 때문이다.

2007년 9월 22일, 명혜망에 사부의 미중지구 명주법회에서 한 신경문이 발표됐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개인 원만을 위해서만이 아니다/…/…구도중생은 대법제자가 반드시 해야할 바이다” 구도중생에는 응당 이미 전화(转化)된 사람과 /‘정진/’하지 못한 사람들이 포함된다. 사부님이 /‘정법/’은 줄곧 끝나지 않으므로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 몇은 그말을 듣고 긴장해났다. 각자 주변에서 누가 연공에 /‘정진/’하지 않는지를 더듬었다. 나와 남편은 자연히 남편의 동생 김명동을 떠올렸다.

김명탁과 마찬가지로 김명동도 1997년부터 법륜공을 연공하기 시작했다. 1999년 나라에서 법륜공단속령 발포시 그는 길림공학원(현재 장춘공업대학으로 명칭변경)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그러나 수련을 위해 그는 학교를 중퇴했다. 사교반대지원자들의 끈질긴 교육과 도움으로 그는 최종 법륜공을 그만두게 됐고 2004년 한국으로 출국, 모 중한무역회사에 근무했다. 두가지 언어(영어와 한국어)를 통달하고 능력이 있었으므로 회사의 중용을 받아 일상 소비를 제외하고 년 10여만(인민폐)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였다.

정말로 천재일우의 /‘만고기연/’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구도중생/’의 위대한 사명을 놓칠 수 있단 말인가?

2008년 2월 1일부터 15일까지 우리는 네살도 채 안되는 아들을 부친한테 맡기고 자비로 한국에 갔다. 첫 한국행인데도 여기저기 구경할 생각도 없이 우리는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동생의 임대방에 박혀 동생만 붙들고 매일 설복했다.

설복이 그닥 순리롭지 않았다. 초기에 김명동은 아무 동요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나한테서 자주 발생되는 환각과 꿈속의 광경을 보는듯 생동하게 이야기해주며 이 모든 것이 모두 진실이라는 믿음을 주려 애썼다. /‘원만/’의 시간이 곧 임박할 이 시각에 만약 이렇게 포기하고 만다면 이전의 고생이 다 헛고생이 아니냐, 나의 거듭 /‘충고/’에 그는 끝내 생각해보겠노라 대답했다.

비자만기일이 임박해 왔으므로 유감스러운대로 귀국했다. 귀국후에도 우리는 단념하지 않고 국제전화와 챗팅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계속 그를 설복시켰다.

노력한만큼 성과가 있기 마련이다. 2008년 4월 3일 김명동은 전부 위약금 지불 후 /‘명, 리, 정/’을 버리고 사귄지 얼마 안되는 여자친구를 떠나 장춘 우리집으로 귀국했다. /‘대법/’에 대한 죄의식을 안고 김명동은 귀국후 이전보다 더 /‘열심히 연공/’했다.

김명동의 회개 태도가 우리들의 /‘보도(普度)중생/’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우리는 우리들의 /‘공력/’이 선명히 제고됐고 /‘원만/’과 한발자국 더 가까와졌다 인식, 계속해서 /‘보도중생/’하려고 주위에서 /‘정진/’하지 않은 사람을 찾았다.

고홍경이 그의 이웃들 중에 이전에 연공하던 사람 몇이 있는데 한번 찾아가보겠노라 했다. 그러나 정작 만나고 보니 다들 노인네들이었다. 가정일이 많은데가 손자들을 학교에 데려가고 오고 혹은 집에 환자가 있어 시중을 들어야 할 형편들이어서 시간적으로 /‘정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입수, 그중에 초영(肖荣, 장춘시 사람, 1979년 출생, 무직업)이란 젊은 여성이 있는데 아주 /‘정진/’하고 몸에 /‘부체/’가 있다 들은것 같은데 그의 남편이 그를 연공못하게 그냥 지키고 있다 했다.

긴급상황이므로 우리 몇은 초영을 꼭 만나 그의 몸에 있다는 /‘부체/’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사부가 /‘부체/’는 호황백류(여우, 족제비, 고슴도치, 뱀) 동물이며 신으로 수련될 수 없기에 그들은 그런 백색물질이 많고 기초가 좋은 사람을 찾아 그들의 니환궁(泥丸宫)에 부착되어 인체의 정화를 흡수하고 인형으로 수련한후 그 사람을 완전 대체하므로 당신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 사람 같으나 실제는 그런 동물의 부체라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전법륜>에서 자신이 <뱀>과 싸워 이겼다고 말했다.

처음 나와 남편, 고홍경과 왕해붕 등 넷이 함께 초영을 찾아갔다. 초영은 연관성없이 서로 모순되는 말들을 횡설수설 괴기하게 주깨댔다. 이홍지의 /‘법신/’이 자기의 신체를 청리해준다 말했다가 또 내가 바로 그 /‘여우/’며 초영이를 따라다닌지 몇천년이 되는데 오늘 만나기를 기다렸다는 등/…/….

우리는 감히 초영의 말을 의심할 수 없었다. 다들 이것이 바로 사부님이 말하는 부체라 인정했고 사부에 대해 더더욱 숭배하게 된 동시에 사부님이 일부러 우리를 고험하고 있으며 어쩌면 그의 /‘법안/’이 옆에서 우리를 지켜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우리는 꼭 /‘마를 쫓아내고/’ 하루빨리 /‘정과/’로 수련되도록 초영이를 도와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어떻게 마를 쫓아낸단 말인가, 우리는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깨달은/’후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2008년 4월 7일, 바로 김명동이 귀국한지 5일째 되는 날이다. 그날 남편은 정상 출근일이므로 회사에 나가고 없고 나와 김명동만이 집에 남았다. 오전 10시경, 야근을 끝낸 고홍경이 우리집을 찾아왔다. /‘정진/’이 부족한 김명동을 잘 설득해 그의 /‘공력/’을 회복시켜기 위해서이다. 점심 12시가 다가오는 시각 이혼수속을 막 마친 초영이 이혼증을 들고 우리집에 찾아왔다. 초영은 집에 들어서자 횡설수설, 말하다 노래를 부르다 춤을 추기도 했다. 혼자 하는 소리가 마치 두사람이 대화를 하고 변론을 하는것 같았다. 초영의 이혼증을 보고 우리는 그의 과감한 행동에 탄복했다. 대법을 믿고 하루빨리 /‘원만/’하기 위해 혼인도, 남편도, 그리고 겨우 8세밖게 안되는 아들도 다 포기하다니, 소영에 비하니 저절로 얼굴이 뜨거워났고 그를 구하려는 결심을 더 크게 다졌다. /‘부체/’를 철저히 쫓아내고 잘 수련시키리라 결심했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방치한다면 초영을 해치게 되고 같은 /‘동수/’로서 옆에서 뻔히 보고만 있을 수 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이 우리에게 마련해준 /‘고비/’일지도 모른다. 사부가 전에 일체 우연이란 없고 모든것이 그가 우리의 심성제고를 위해 마련한 /‘고비/’라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에서 요구한대로 우선은 <전법륜>중의 /‘논어/’을 읽고 초영을 둘러싸고 /‘법/’을 소리내 읽고 계속해서 함께 /‘발정념/’했다. “법정건곤, 사악전멸/…/…” 그러나 시간이 반시간이 흘렀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사부의 “모든 방법으로 사악을 해제”할데 대한 요구대로 얼음물을 끼얹어도 쓸모없었다. /‘여우/’가 뜨거움을 탄다 믿고 나는 또 끓는 물을 병에 넣어 초영의 배 우에 놓았다. 초영은 뜨겁다고 소리질렀다. 우리는 초영에게 /‘여우/’가 갔나 물었다. 갔다는 초영의 대답에 우리는 손을 멈췄다. 그런데 조금후 초영은 또 횡설수설 미친사람 같이 히죽거렸다. 우린 이 /‘여우/’가 사람을 속인다 판단, 테레비에서 본대로 초영의 입술상부를 침으로 찔렀으나 효과가 없었다. 정 별수가 없자 우리는 전화로 /‘공력/’이 막강한 왕해붕을 불렀다. 왕해붕은 들어서자 이런 /‘여우/’한테는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된다, 사부님이 /‘더는 참을래야 참을 수 없다/’하지 않았냐 했다.

우리넷은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귀썀부터 후려쳤다. 그는 아프지 않다 외치며 우리보고 더 힘을 내 때리라 했다. 후에 남자몇이 닥치는 대로 아무데나 발로 걷어찼다. 초영의 온몸은 퍼렇게 멍들어 성한데가 없었고 얼굴도 팅팅 부어났다. 이때에야 초영은 조용했고 더는 소리지르지 않았다. 이 방법이 효과적이자 다들 계속해서 그가 땅바닥에 엎드려 꼼짝 움직이지 않을때 까지 주먹질 발길질을 해댔다. /…/…

이때 김명동이 이상하게 느껴져 죽은게 아니냐며 안되면 병원에 싣고 가자 했다. 우리 셋은 이구동성으로 불가능하다 했다. 연공하는 사람은 모두 사부 /‘법신/’의 보호를 받으므로 “자동차에 치워도 죽지 않을 사람을 어떻게 우리가 때려 죽일 수 있겠는가” 했다.

사실 초영은 정말로 죽었다. 우리 넷은 멀쩡한 사람을 무참하게 때려죽였던 것이다.

(Kaiwind.com, 201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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