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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고혼

2015-12-16 기원 하 다:개풍망 Auteur:왕위즈

료닝(辽宁)성 링우앤(凌源)시 완우앤댄(万元店)진 주쟈잉즈(祝家营子) 동쪽 잡초가 무성한 산 언덕에 외로운 무덤 하나가 있다. 거기에 겨우 서른세살의 농가여성, 내 여동생이 잠들어 있다.

나의 동생 왕위민(王钰敏)은 예전에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건장한 체격에 성격이 어수룩한 남편이 향진기업에 출근하고 슬하에 아들 딸 하나씩 두고 넓은 정원을 가진 덩그런 기와집에 살고 수전 여러 무(亩)를 소유한 인근에서는 부유한 가정으로 꼽혔다.

1998년 초 동생이 괴질을 앓았다. 어디에 조금만 맞혀도 피가 흘렀는데 지혈이 안되고 매월 /‘달거리/’가 열흘, 보름씩 끊기지 않아 종일 기운 없어 농사일은커녕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었다. 현성의 병원에 여러번 찾아가도 무슨 병인지 확진이 어려웠고 침 맞고 약을 복용해도 효과가 없어 식구들이 돈을 모아 성도 큰 병원에 가 보기로 토론했다.

그런데 성도 병원으로 떠나기도 전에 /‘마음 착한 분들이/’ 동생 집을 찾아와 “병이 생기면 법륜대법을 수련하면 주사를 맞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자연히 낫는다”며 법륜공을 수련하라고 권했다. 성도병원에 가려면 목돈이 필요했으므로 일시에 목돈 마련하기 어려운데다 권유하는 사람이 /‘마음씨 착한/’ 친숙한 분이라 한번 해 보자는 속셈으로 그들을 따라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금방 동수들이 말하는 대법의 신기한 /‘공력/’에 매혹되었다. 많은 인류의학이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들도 대법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더더욱 흥분했다. 건강을 갈망한 동생은 얼마 가지 않아 법륜공에 심취되고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며 내외겸수(内外兼修)했다. 책을 차서 이론을 공부하고 또 동작 표준성을 연구하고 정기적으로 동수들과 공법을 토론했다. 얼마 동안의 수련을 통해 병 상태가 호전은 없었지만 전복적인 심리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장차 자신이 /‘소업/’하고 신체가 /‘내백체(奶白体)/’로 수련되어 /‘과위(果位)/’로 승화할 것이고 나아가 영원한 청춘을 유지하고 금강불괴(金刚不坏)할 것이라고 늘 말했다. 낯 색이 창백하고 말하는 상태거나 걸음걸이가 너무 허약해 보여 병을 더 지체 말고 어서 병원에 가 보라고 권했지만 “좀 더 연마할거야, 연공장 사람들이 모두 병 있어도 병원에 가지 않고 일편단심 연마하면 된다고 말했어, 아직 나의 공력이 부족해서 그래, 공력이 달하면 병이 자연히 낫게 될 거라,”말하고 이어  /‘기장(气场)/’이고 /‘법륜/’ 따위를 늘어놓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나에게는 다 구름 잡는 소리로만 들렸다. 이렇게 동생은 여전히 기공수련을 견지하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건강상태가 날로 떨어지고 몸이 어디에라도 맞히기만 하면 멍들고 피가 나면 지혈이 안되고 종일 무기력했다.

1999년 3월, 동생은 낯 색이 더 창백해지고 말할 때 맥이 없고 어지럽고 메스꺼운 증상을 호소했다. 달거리 때면 더더욱 하혈을 멈추지 못하고 아예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어 가족들에 의해 현성병원으로 옮겨졌다. 혈소판을 수혈하고 링거주사에 약을 복용해 상태가 조금 호전되자 그는 또 급히 퇴원하여 집에 돌아와 계속해서 공을 연마하고 “업을 짓눌러 내려 보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7월 22일, 정부에서 법륜공수련을 금지한 후에도 동생은 멈추지 않고 마치도 강심제를 맞은 사람처럼 계속해서 연마하고 법을 학습하고 가부좌하고 경문을 외웠다.

1999년 10월 어느 하루, 동생이 동수들과 함께 남몰래 이웃 마을에 연마하러 가는 도중에 실신해서 쓰러졌는데 도로변의 돌에 머리를 부딪쳐 일어설 수 없었다. 동행한 동수가 “법륜대법이 좋다” 묵념하면 일어난다 해 “법륜대법이 좋다” 묵념하고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러나 몇 발작을 내딛지 못하고 재차 쓰러졌다. 때마침 고마운 이웃이 보고 가족들에게 알려 구급차를 불러 재차 그를 현성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동생의 동수는 인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현성 병원에 도착했지만 의사가 “조건이 안되니 어서 성도 병원으로 옮기라”고 하여 가족들이 차를 임대해 당일로 그를 심양 중국의과대학부속병원으로 옮겨 링거주사 등 응급치료를 했음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1999년 10월 19일 병원에서 숨졌다. 의사의 말에 이 병이 혈소판 감소증이란 병인데 일찍 병원으로 옮겨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했어야 하는데 환자가 제때에 병원치료를 받지 못하고 약을 계속 복용하지 않은데다 과도한 운동으로 상태가 심해지고, 이번은 외력으로 인한 뇌출혈로 이런 결과를 빚었다고 했다.

현지 풍습에 35살 전에 사망한 자는 조상의 묘지에 묻힐 수 없으므로 가족들이 왕위민을 어느 황량한 산 언덕에 묻었다. 불쌍한 내 동생, 갓 소학교에 입학한 딸과 겨우 3살인 아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행복하던 한 가정이 이렇게 무너졌다.

 젊은 시절의 왕위민

(책임편집: 신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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